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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

음양의 기원

by 아토할란 2024. 6. 13.

음양설과 오행설은 원래 독립되어 있었으나 대략 기원전 4세기 초인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결합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었다. 제(齊)나라의 추연(騶衍)이 체계적으로 결합시켰다고 전해오나 입증할 만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한대(漢代)가 되면서 두 관점이 하나의 정합적인 이론으로 통합된 것은 확실하다.

 

어원으로 보면 음(陰)·양(陽)이라는 두 문자는 각각 어둠과 밝음에 관련되어 있다. 음이라는 글자는 언덕[丘]과 구름[雲]의 상형(象形)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이라는 글자는 모든 빛의 원천인 하늘을 상징하고 있다.

원래는 가장 오래된 천문기계인 구멍 뚫린 구슬 원반 소유자를 나타내거나 비스듬히 비치는 태양광선 또는 햇빛 속에서 나부끼는 깃발을 나타내고 있었다. 결국 음은 여성적인 것, 수동성·추위·어둠·습기·부드러움을 뜻하고, 양은 남성적인 것, 능동성·더위·밝음·건조함·굳음을 뜻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두 개의 상호보완적인 힘이 서로 작용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을 발생시키고 변화, 소멸시키게 된다고 본다.

 

음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3세기에 편집된 듯한 ≪국어 國語≫에 나타나 있다.

주(周)나라 태사(太史)인 백양보(伯陽父)의 지진에 대한 설명으로 양기(陽氣)가 숨어서 나오지 못하면, 음기(陰氣)가 눌려서 증발할 수 없으므로 지진이 발생한다고 기술하였다. 

 

≪역경≫ 계사(繫辭)에 “일음일양 그것이 도이다(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여 우주에는 두 가지의 힘 또는 작용이 있어 때로는 한쪽이, 어느 때는 다른 쪽이 물결과 같이 계기적으로 우세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묵자 墨子≫·≪장자 莊子≫ 및 ≪도덕경 道德經≫에도 음양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음양사상에는 상반(相反)과 응합(應合)의 논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상반은 +와 -의 대립이고 응합이란 상반이 단순한 대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상호의존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반응합의 사상은 음양사상에 이르러 비로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강유(剛柔)의 이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강유의 이론을 소급해 올라가면 ≪역경≫의 십익(十翼)으로부터 ≪도덕경≫을 거쳐 ≪서경≫의 홍범(洪範)에 이르게 된다.

 

<홍범> 구주(九疇)의 여섯번째에 삼덕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삼덕의 사상이 강유의 이론으로 강과 유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음양설은 주로 ≪주역≫과 연관되어 있는데, 효(爻)와 괘(卦)에서 획선(劃線) 은 양을, 절선(絶線) 은 음을 나타낸다.

팔괘(八卦) 중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각각 로서 양과 음의 특별함을 상징하고, 나머지 6괘는 음양의 효가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이것은 음·양 교역(交易)의 과정을 도획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천지 만물의 생성을 나타내고 있다.

 

계사에 “천지의 기운이 서로 감응합일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번영하며 남녀의 정기가 결합되어 인간이 화생한다.” 하는 구절이 있는데, 천지와 인간이 서로 구별되지 않고 대우주-소우주의 상관관계로서 서로 밀접하게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명리에서는 음양을 대대성()으로 인식한다.

음이 존재해야 양의 존재가 가능하고, 양이 존재해야 음의 존재가 가능하다.

만약 음이 없다면 양은 양으로 명하지 않는 다른 것이다. 음도 마찬가지다.

 

음양은 조화를, 오행은 균형을 추구한다.

 

 

 

<출처>

이희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묘    나의 사주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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